스타디움 장내 중계방송에서 손기정을 ‘한국인대학생’이라고 표현
2012-01-06 오후 5:45:56 관리자 조회 1374
 

“그 한국 대학생은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그 한국인은 마라톤 구간 내내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타는 듯한 태양을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를 지나 뛰었습니다. 이제 그가 엄청난 막판 스퍼트로 질주하며 들어오고 있습니다. 트랙의 마지막 직선코스를 달리고 있습니다. 1936년 올림픽 우승자 ‘손’이 막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1936년 8월9일 베를린올림픽 남자마라톤 우승자 고 손기정 선생이 당시 베를린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공식 지칭됐다.

 독일역사박물관 독일방송기록보관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베를린올림픽 스타디움에서 12만 관중을 상대로 한 남자마라톤 생중계내용 중 결승선에 골인하는 손기정 선생을 ‘한국 대학생(실제 양정고 5학년)’ ‘한국인’으로 표현 한 것.

 “다섯 개의 그룹 중 일본팀은 첫 번째 그룹에 있습니다. 그들은 이번 올림픽을 위해 특별히 선발되었고 한번도 올림픽에서 뛰어보지 않은 신예들로 이름은 남(Nam), 시오아쿠(Chiwagu·염전 인부 출신), 손(Son)입니다. 일본팀 감독의 말로는 ‘손’을 이기려면 태양이 작열하든, 비가 오든, 자갈밭이든, 풀밭이든 초인적으로 뛸 수 있어야 한답니다. ‘손’이 결국 우승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강력한 우승후보이던 자바라는 반환점을 1시간11분9초로 가장 먼저 돌았고 2위 그룹인 손기정과 영국의 하퍼는 그보다 1분10초 늦었다.

 하지만 초반 오버 페이스한 자바라는 점점 발이 느려졌다. 손기정은 아포스 자동차도로부터 하펠 호숫가 코스로 접어드는 29km 지점에서 자바라를 제치고 선두에 나서 결승선까지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단독 질주 했다.

 “자바라가 속도가 느려지고 불안정해집니다. 급기야 자바라의  반짝이는 옷 색깔이 선두진영에서 사라집니다. 이번 마라톤의 유망주였던 카를로스 자바라는 우리 눈으로 보기에 이제 선두에서 200m 뒤처져 있습니다."

  결승선을 100~200m 앞에서의 질주 모습을 아나운서는 “막판 엄청난 스퍼트로 질주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코스는 거의 편평하다. 더구나 13~30km지점은 직선인 고속도로. 아푸스아우토반 중간에 있는 반환점을 돌아오는 코스다. 1~13km와 30~42.195km 지점은 10만평의 그루네 발트(‘녹색 숲’이라는 뜻) 공원을 달리는 숲속 길. 하벨 강변을 따라 나있는 코스 주변엔 지금도 2,3백년이 넘는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하다. 다람쥐, 고라니, 멧돼지, 토끼, 여우 등이 살 정도.

 소위 ‘빌헬름황제 언덕(35km)'이나 ’비스마르크 언덕(40km)'은 없다. 그 지점은 표고 2m정도의 약간 오르막 부분일 뿐이다. 황영조 감독은 “고속도로 부분은  약간 덥고 지루했겠지만 달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며 “40km지점의 페르스트라야 철교 아래 S자 오르막이 좀 걸리지만 2위 하퍼를 2분 거리로 떨어뜨린 상황에선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출발은 오후 3시2분. 스타디움 트랙을 한바퀴 4분의1(500m)을 돌고 빠져나갔다. 56명중 22번째. 강력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의 자바라(1932년 LA올림픽 우승자)가 2위와 150m 거리를 두고 선두로 뛰쳐나갔다. 약간 기온이 높았지만(섭씨 21~22.3도) 바람이 거의 없는 맑고 건조한 날씨라 숲 속에 들어서면 오히려 쾌적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손기정 선생은 10km지점 5위(34분10초), 25km지점 3위(1시간24분49초)로 가다가 마침내 28km지점에서(1시간35분29초) 선두 자바라를 32초차로 따라붙었다. 거리로는 약 150m. 손 선생은 내친김에 29km지점에서 자바라를 제쳤고(자바라 31km지점에서 기권) 31km지점에선 끈질기게 따라붙던 영국의 하퍼를 16초차(75m)로 제치고 단독 선두에 나섰다. 31km 지점은 따가운 아스팔트길인 아푸스 아우토반이 끝나고 다시 그루네발트의 숲 속으로 접어든 곳.

  황 감독은 “손선생은 계속 이어지는 시원한 숲속 길에선 하퍼를 제치기가 힘들다고 판단해 아스팔트길이 끝나는 이 지점에서 스퍼트를 했을 것”이라며 “바르셀로나에서 29km지점부터 일본의 모리시타를 떨어뜨리려고 10여번 쯤 스퍼트를 했는데 그 때마다 이 친구가 물귀신처럼 달라붙어 혼났다”고 말했다. 결국 40km 몬주익 언덕에서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스퍼트를 했는데 “그 때 모리시타가 또 따라붙었다면 아마 내가 먼저 포기했을 것”이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후 황 감독은 모리시타를 만나 이 얘기를 했더니 모리시타는 “설마 거기서 치고나갈 줄은 몰랐다. 난 마지막 트랙에서 승부를 보려고 했었다. 지금도 내가 이기는 레이스였다고 생각한다.”마며 한스러워 하더라고 말했다.


 손기정선생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기록은 2시간29분19초. 100m 평균 21.23초의 빠르기다. 당시 역대올림픽 사상 최고기록이자 2시간30분벽을 처음으로 깬 대단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56년 뒤 후배 황영조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마라톤 우승기록 2시간13분23초(100m 평균 약 18.97초)보다 15분56초 느리다. 현재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기록(2시간3분59초)보다는 무려 25분20초 늦다. 손 선생의 우승기록은  영국의 파울라 래드클리프의 여자 세계최고기록 2시간15분25초보다도 13분54초 느리다. 래드클리프는 100m를 평균 19.25초에 달려 손 선생보다 1.98초 빠르다. 요즘은 웬만한 아마추어 남자마라토너들의 우승기록이 2시간20분대에 이른다. 그만큼 세계마라톤 기록은 70년 동안 엄청나게 단축돼 왔다. 식이요법 신발개발 등의 과학적 훈련과 평탄한 코스 개발 등이 그 원인이다. 현재 한국마라톤 최고기록은 이봉주의 2시간7분20초(100m 평균 18.10초, 시속 19.872km).

 손 선생의 우승기록은 2시간29분19초. 역대올림픽 사상 최고기록이자 2시간30분벽을 처음으로 깬 것. 하지만 이것은 올림픽최고기록이지 세계최고기록은 아니다. 당시 세계최고기록은 손 선생이 1935년 11월 일본도쿄 메이지신궁대회에서 세운 2시간26분42초. 이 기록은 12년 뒤인 1947년 4월 손 선생의 제자 서윤복이 보스턴마라톤에서 2시간25분39초로 우승하며 갈아 치웠다. 한국인이 세운 남자마라톤 세계최고기록을 같은 한국인이며 제자인 서윤복이 넘어선 것이다.


 손기정 선생은 폭염 속에서 달리지 않았다. 1936년 8월9일 오후 3~6시 베를린은 섭씨 21~22.3도, 습도 20%의 맑고 건조한 날씨. 마라톤 최적 기온(섭씨 9도 안팎, 습도 30%)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에서 말하듯 30도가 넘는 찜통더위는 아니었다. 더구나 1~13km와 30~42.195km 구간은 10만평의 그뤼네 발트(‘녹색 숲’이라는 뜻) 공원을 달리는 숲 속 길. 지금도 200~300년이 넘는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해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다만 13~30km지점의 직선 고속도로(아푸스아우토반)를 달릴 때 약간 더웠으리라 생각된다. 바르셀로나올림픽 땐 섭씨 28도에 습도 80%의 한증막 날씨.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생은 왜 마지막 100m를 그렇게 빨리 달렸을까?

 손기정 선생은 왜 결승선을 100m 앞두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렸을까. 당시 외국의 한 감독은 “수동시계로 재본 결과 마지막 100m는 15초정도에 통과했다”고 말했다. 이는 손 선생의 100m 평균 21.23초(우승기록은 2시간29분19초)보다 6.23초 빠르게 달린 것. 생전 손 선생은 “10만관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고무되기도 했고, 누가 등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당시엔 뒤를 돌아보면 실격은 아니지만 정당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받아서 달리면서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어”라고 말했다.


  손 선생은 레이스 내내 25km지점에서 딱 한번만 물을 마셨다. 40km지점에서 독일 간호사가 물을 컵에 담아 줬지만 입을 한번 헹군 뒤 뱉었고 나머진 머리에 쏟아 부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당시 물을 마시면 배가 출렁거리거나, 배가 아파 달리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다른 선수들도 거의 물을 마시지 않고 달렸다. 매 5km마다 물을 마시며 달리는 요즘 선수들과 좋은 비교가 된다.


  손기정 선생이 달리는 모습을 찍은 당시 기록영화 중 일부분은 나중에 연출된 것이다. 손 선생은 우승한 다음날 당시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를 총지휘하던 레니 리펜슈탈 감독에게 불려가 하루 종일 달리는 모습을 다시 찍어야 했다. 생전에 손 선생은 “그렇지 않아도 피곤해 죽겠는데 자꾸 달리라고 해서 나중엔 러닝셔츠를 뒤집어 입고 뛰었는데 그 모습이 기록영화에 잠깐 나오더구먼”이라고 말했다. 등 뒤쪽 셔츠 하단에 ‘732’라는 번호 숫자가 뒤집혀서 언뜻 스치듯이 나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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