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기록의 시대가 열리다
2012-01-05 오전 11:23:56 관리자 조회 3159
 

인간이 사냥을 해서 먹고 살 땐, 먹잇감보다 더 끈질기거나, 더 빠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달리기가 하나의 스포츠로 굳어지자, 다른 선수를 제치는 게 급선무가 됐다. 그 기준이 바로 기록이었다. 인간과 시간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곧 ‘인간의 1마일 4분벽 돌파’였다. 

 1953년 5월29일 오전 6시15분. 인간이 마침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꼭대기(8848m)를 밟았다. 그 주인공은 영국원정대 소속의 뉴질랜드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 그 나흘 뒤인 6월2일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이 열렸다. 영국대중들은 열광했다. ‘지는 해’ 대영제국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마일을 4분 안에 달리는 것’이었다. 1마일은 약 1609m로 육상트랙 4바퀴를 도는 거리이다. 영국인들은 그 마의 벽도 반드시 영국인에 의해서 깨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이 1마일을 4분 이내에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당시 생리학자들은 ‘만약 인간이 1마일을 4분 안에 달린다면 곧 심장과 허파가 파열돼 죽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뼈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생리학자들이 한때 ‘인간은 결코 1마일을 5분 안에 달릴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5분벽은 1804년 스코틀랜드 지주 로버트 바클리 캡틴(4분50초)에 의해 간단하게 깨졌다. 1825년엔 제임스 메트카프라는 사나이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기록을 무려 20초(4분30초)나 앞당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자신이 기르던 사냥개를 뒤따라 달린 것이다. 한마디로 그 사냥개가 최초의 페이스메이커라 할 수 있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형체도 없는 ‘인간 대 시간의 경주’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경주’가 기록을 단축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누군가가 트랙을 2,3바퀴까지만 전속력으로 앞서 끌어준다면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 800m, 1500m선수들이 1마일 경주에 페이스메이커로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록도 점점 나아졌다. 1886년 윌터 조지가 4분12초8까지 끌어올렸고, 1915년 미국 타버가 0.2초(4분12초6)를 또 앞당겼다. 사람들은 타버의 기록이 당분간 깨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핀란드의 육상영웅 파보 누르미가 있었다.

 1923년 누루미는 4분10초4의 신기록을 세웠다. 여기엔 스웨덴의 1마일 주자 에드빈 와이드의 초반 오버페이스가 큰 힘을 발휘했다. 와이드는 첫 바퀴를 너무 빨리 돌았다. 누루미도 와이드 페이스에 따라 평소보다 빨리 달릴 수밖에 없었다. 와이드는 3바퀴까지 빠른 속도로 달리다 결국 힘이 달려 뒤처졌다. 하지만 훈련벌레인 누루미는 그 속도를 계속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와이드가 페이스메이커역할을 해준 것이다. 결승선을 끊은 누루미는 “앞으로 4분4초까지는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31년 10월 프랑스 줄리 로도메그가 사상 처음으로 ‘4분 한 자리수대(4분9초2)’를 끊었다. 역시 페이스메이커 역할이 컸다. 800m 전문선수 르네 모렐이 2바퀴 반까지 전속으로 끌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기록이었다. 1937년 영국 시드니 우더슨의 4분6초4 신기록도 여러 명의 페이스메이커가 3바퀴까지 끌어준 덕분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우더슨은 168cm 57kg의 볼품없는 체구였지만 4바퀴째 폭발력은 대단했다.    

 2차 세계대전 말. 스웨덴에 세계최고의 1마일 주자 2명이 동시에 등장했다. 몸이 부드럽고 폼이 자연스러운 군다 하에그와 폼은 딱딱하지만 연습벌레인 아르네 안데르손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 말리는 경쟁을 벌였다. 4분벽을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자연스레 서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며 조금씩 4분벽에 다가갔다.

 4분4초6(42년·하에그)→4분2초6(43년·안데르손)→4분1초6(44년·안데르손)→4분1초4(45년·하에그).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4분벽은 끝내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10년 가까이 이들을 넘어설만한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록이 뒷걸음질 쳤다. 

 1954년 4월까지 4분벽에 가장 근접한 선수는 호주의 존 랜디였다. 그는 그 때까지 4분3초 이내로 6번이나 결승선을 끊었다. 하지만 그를 끌어줄 페이스메이커가 없었다. 그는 늘 2바퀴쯤 지난 뒤엔 혼자 맨 앞에서 달려야만 했다. 1953년 12월12일 4분2초, 1954년 1월21일  4분2초4…. 지긋지긋한 2초였다. 랜디는 끝내 지쳐버렸다.

 “나 혼자 힘으로 그 기록을 깨는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 날 끌어줘야 한다. 2초는 아주 작은 것 같지만 이제 그것은 나에게  돌 벽을 깨는 것 같이 느껴진다. 솔직히 내 능력 밖의 일인 것 같다.” 

 랜디의 뒤를 바짝 쫓는 선수는 영국의 로저 배니스터였다. 그는 내심 2명의 페이스메이커가 자신을 끌어만 준다면 4분벽을 충분히 깰 수 있다고 생각했다. 2번째 바퀴까지 2분에 이끌어줄 사람 1명과 3번째 바퀴를 60초 이내에 이끌어줄 사람 1명이 필요했다. 그는 그의 달리기 친구 브래셔와 채터웨이를 끌어들여 연습을 시작했다. 브래셔가 2바퀴까지 2분 이내에 끌어주고, 채터웨이가 3번째 바퀴를 1분 이내에 끌어주는 방식이었다. 나머지는 배니스터 몫이었다. 다행히 배니스터는 후반 스퍼트가 탁월했다. 만약 그가 4번째 바퀴를 1분 이내에 달릴 수만 있다면 4분벽은 깨지는 것이었다.

 1954년 5월6일. 마침내 1마일 경주가 시작됐다. 브래셔가 첫 번째 바퀴를 57초에 끊었다. 배니스터는 브래셔의 등 뒤에 바짝 붙어 57.5초를 기록했다. 3번째 바퀴까지 이끌어줄 채터웨이도 바짝 따라왔다. 브래셔는 2번째 바퀴도 1분58초 기록으로 배니스터를 선두에서 끌었지만 곧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3번째 바퀴는 채터웨이가 있었다. 채터웨이가 3번째 바퀴까지 3분으로 선두에서 끌었다. 이젠 배니스터가 마지막 스퍼트를 할 차례였다. 그건 그의 장기였다. 배니스터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내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승선을 끊었다. 3분59초4. 배니스터는 극심한 고통으로 의식을 잃었다.

 배니스터는 말한다. “인간의 몸은 생리학자들보다 수백 년은 앞서있다. 생리학이 비록 호흡기와 심혈관계의 육체적 한계를 알려 줄지는 모르지만, 생리학지식 밖의 정신적 요인들이 승리냐 패배냐의 경계사선을 결정한다. 운동선수가 얼마나 절대한계까지 갈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

배니스터가 1마일 4분 장벽을 깬 지 6주후인 1954년 6월21일, “4분벽은 벽돌 장벽이다. 다시는 도전하지 않겠다”던 존 랜디가 3분58초로 1마일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그뿐인가. 배니스터 신기록 이후 두 달도 안돼 전 세계에서 10명이 4분벽에 진입했다. 그 숫자는 1년 후엔 27명, 2년 뒤엔 300명으로 늘었다. 현재 1마일 세계기록은 99년 모로코의 히참 엘 구에로가 세운 3분43초. 17초나 빨라졌지만 아무도 심장이 파열된 경우는 없었다. 최근엔  37세의 노장이 4분벽을 넘어 화제가 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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